셰르파 요가

SHERPA MAGAZINE · 제1호

인문·철학

이름이 새겨진 안전모

벗셰르파 편집부· 2026.09.04

올해 5월 28일 광주의 한 강당, 테이블 위에 안전모들이 가지런히 놓였습니다. 각각에는 이름과 국기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스리랑카·태국·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날 행사의 이름은 '이주노동자 이름 불러주기'였습니다.

이름이 있는데도 불리지 않았습니다

캠페인이 생긴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이름 대신 "야", "야 인마"로 불렸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모두 이름이 있고, 서류에도 적혀 있습니다. 다만 불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차피 오래 있을 사람도 아니라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정부는 올해 4월 울산을 시작으로 이주노동자의 이름을 부착한 안전모를 건설현장과 조선소 등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6월에는 경북 예천의 스마트팜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14명이 자기 이름이 적힌 안전모를 받았습니다.

안전모는 원래 머리를 지키는 장비입니다. 거기에 이름을 적으면, 그것을 쓴 사람이 보입니다.

부른다는 것은 사소한 일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제도를 고칠 필요도, 회의를 열 필요도 없습니다. 두 음절, 세 음절을 입 밖으로 내면 됩니다.

그런데도 캠페인이 필요했습니다. 사소하기 때문에 더 오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큰 일은 감시받고 기록되지만,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니까요.

수련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봅니다. 몇 달을 같은 시간에 만난 사람끼리도 이름 대신 "저기요"로 지냅니다. 서로가 싫어서가 아니라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면 그대로 굳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묻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린 다음에 오는 것

하지만 이름을 부른다고 근로조건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안전모에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현장이 안전해지지도 않고요. 이 점을 가리면 이 이야기는 금세 따뜻한 미담으로 미끄러집니다.

다만 순서라는 게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 관계에서는 그 사람이 오늘 어디가 아프고 어제 몇 시간을 일했는지 묻게 되지 않습니다. 묻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면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부르는 일은 끝이 아니라 입구입니다. 거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거기서 시작하지 않으면 그 다음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름을 적을 수 있는 자리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기 이름이 적힌 물건을 꽤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명함, 사원증, 책상 이름표. 대부분 묻지 않아도 당연히 주어진 것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캠페인이 되어야 생깁니다.

오늘 하루, 이름을 모르는 채로 스쳐 지나간 사람이 몇 명이었는지 세어보시면 어떨까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 은유 (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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