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요가

SHERPA MAGAZINE · 제2호

인문·철학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 한 의사가 남겼다는 빈 책

벗셰르파 편집부· 2026.09.25

한 의사가 죽었습니다. 유품 가운데 봉인된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표지에는 '의술의 유일하고도 가장 깊은 비밀'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의사가 평생의 비결을 적어 봉해 둔 책이었으니, 경매에 나오자 큰돈이 붙었습니다.

낙찰받은 사람이 봉인을 뜯었습니다. 책장은 비어 있었습니다. 한 장, 한 줄만 손글씨로 남아 있었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그리고 배는 너무 채우지 말 것.

이야기의 주인공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헤르만 부르하버입니다. 1668년 마지막 날 네덜란드 라이덴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738년 9월 라이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라이덴 대학에서 의학과 식물학, 화학 세 분야의 교수직을 동시에 맡았습니다. 병원에 남녀 여섯 병상씩 열두 병상을 두고, 학생들을 강의실이 아니라 환자 곁으로 데려가 가르쳤습니다. 제자였던 스위스의 학자 할러는 그를 '전 유럽의 스승'이라 불렀습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그를 만나러 라이덴을 찾았고, 중국에서 "유럽의 의사 부르하버에게"라고만 적은 편지가 무사히 그의 손에 닿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가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말은 라틴어 세 단어였습니다. 심플렉스 시길룸 베리(Simplex sigillum veri). 단순함이 진리의 표지다. 이 말은 지금도 라이덴 피터르스 교회에 있는 그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빈 책은 정말 있었을까

여기서 솔직해져야겠습니다. 봉인된 책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부르하버가 죽은 이듬해 영국의 새뮤얼 존슨이 그의 전기를 잡지에 연재했습니다. 임종의 고통과 마지막 몇 주까지 자세히 적은 글인데, 빈 책 이야기는 한 줄도 없습니다. 이후에 나온 전기와 연구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는 학술 문헌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나중에는 건강 서적과 인터넷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판본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책값이 2만 달러였다는 판본도 있고, 네덜란드에는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그러면 최고의 의사도 가난해진다"는 운율 맞춘 판본이 떠돕니다. 한국에서 소개될 때는 그가 죽은 해가 잘못 적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이렇게 말하는 게 정직할 것 같습니다. 부르하버는 실존했고, 그의 좌우명은 확실히 '단순함'이었으며, 빈 책 이야기는 그 좌우명에 사람들이 나중에 붙여 준 옷이라고요.

그런데 왜 300년을 살아남았을까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가 30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 이야기가 부르하버라는 사람과 잘 맞기 때문입니다. 단순함이 진리의 표지라고 평생 말한 사람이라면, 비밀을 묻는 이들에게 빈 책을 남기는 장난을 쳤을 법도 합니다. 사실이 아니어도 그답습니다.

둘째, 그 한 줄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배는 너무 채우지 말 것. 동아시아에도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습니다.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전통이 같은 결론에 닿았습니다.

셋째,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건강의 비밀이 어딘가 봉인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것을 비싼 값에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 이야기는 그 기대를 정확히 겨냥해서, 빈 책장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비밀은 없다. 아니, 비밀은 너무 단순해서 아무도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

매트 위에서 다시 읽으면

수련을 마치고 누워 있을 때 몸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떠올려 봅니다. 머리는 식어 있고, 발끝은 따뜻하고, 배는 가볍습니다. 한 시간 동안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몸을 펴고, 숨을 고르고, 잠시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뿐입니다.

빈 책의 한 줄은 대단한 처방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다시 적어 놓은 것에 가깝습니다. 어려운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매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책이 빈 책이었을 겁니다. 적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어 봐야 소용이 없어서.

오늘 당신의 머리는 어떤가요. 발은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몸의 일기』 — 다니엘 페나크 (문학과지성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