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요가

SHERPA MAGAZINE · 제2호

인문·철학

네 개의 자리 — AI가 다시 그리는 계급의 지도

벗셰르파 편집부· 2026.09.25

계급이라는 말은 오래 두 칸이었습니다.

가진 것에서 버는 사람과 일해서 버는 사람.

200년 가까이 이 두 칸으로 세상이 설명됐습니다.

지금은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월급을 받으면서 주식으로도 버는 사람,

일자리가 아예 사라진 사람,

기계가 학습할 데이터를 만드느라 밤을 새우는 사람.

두 칸에 넣기 어려운 자리들이 늘었습니다.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올해 7월,

AI가 널리 퍼진 이후의 사회를 네 칸으로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그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의 스케치"라고 부른 그림입니다.

확정된 예측이 아니라 초안에 가깝지만,

지금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 가늠해 보기에는 충분합니다.

AI 이후 밀라노비치가 그린 네 개의 자리와 호모플루티아의 증가
AI 이후 밀라노비치가 그린 네 개의 자리와 호모플루티아의 증가

맨 위 — 테크노 영주

첫 번째 자리는 소수의 극단적 부유층입니다.

밀라노비치는 이들을 테크노 영주(techno-lords)라고 부릅니다.

규모는 수천 명 수준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들이 소유한 것은 공장이 아니라 모델입니다. 그리고 모델은 공장과 다르게 사람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전의 부자는 노동자 없이는 부자일 수 없었습니다. 배를 만들려면 용접공이, 차를 만들려면 조립공이 수만 명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자본과 노동은 싸우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했습니다.

지금 만들어지는 부는 그 고리가 헐거워졌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르게 불어난 부가, 역사상 가장 적은 사람을 고용하며 만들어집니다.

두 번째 — 호모플루틱 계급

그 아래 자리에 밀라노비치가 호모플루틱 계급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 인구의 약 3퍼센트로,

자본소득 상위 10퍼센트이면서 동시에 임금소득 상위 10퍼센트인 사람들입니다.

이 자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오래된 두 칸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자본가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입니다.

밀라노비치가 요나탄 버먼과 함께 쓴 연구에 숫자가 있습니다. 자본소득 상위 10퍼센트에 드는 사람 중 노동소득에서도 상위 10퍼센트인 비율은 1980년 약 15퍼센트였습니다. 2017~2018년에는 약 30퍼센트가 됐습니다. 마흔 해 사이 두 배로 늘어난 셈입니다.

더 선명한 수치도 있습니다. 자본소득 최상위층의 평균 노동소득 순위입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들은 중위값 아래였습니다. 가진 것으로 사는 사람들은 임금 면에서는 평범하거나 그 이하였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약 65분위입니다.

떠올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을 받는 기업 임원, 지분을 가진 로펌 파트너.

이들에게는 일이 곧 자산이 됩니다. 높은 임금을 받는 자리에 오르면 보상의 상당 부분이 지분으로 지급되고, 그렇게 쌓인 자산이 다시 더 긴 호흡의 커리어를 감당하게 해줍니다. 두 종류의 소득이 서로를 밀어 올립니다.

밀라노비치는 AI 이후에도 이 계급이 자기 위치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강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세 번째 — 아직 대체되지 않은 노동

세 번째 자리는 서비스 부문 노동자입니다.

아직 AI로 대체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직'이라는 말이 이 자리의 전부입니다.

낮거나 중간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대체의 압력을 계속 받고,

그 아래 칸으로 밀려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여기에 잘 보이지 않는 한 무리가 겹칩니다. 모델에게 학습할 것을 대주는 사람들입니다. 2023년 초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챗GPT를 만드는 과정에서 케냐 노동자들이 시간당 2달러가 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장 새로운 기술의 밑바닥에 가장 오래된 형태의 노동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는 지도에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같은 산업 안에 있으면서도 맨 위 칸과는 서로의 존재를 볼 일조차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맨 아래 — 할 일이 없는 사람들

네 번째 자리를 밀라노비치는 잉여 인구라고 부릅니다.

일자리가 없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며,

인구의 15~20퍼센트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주목할 것은 그가 이 자리를 '가난'이 아니라 '할 일 없음'으로 정의한다는 점입니다.

기본소득과 오락으로 관리되는 상태를 그는 그려 보입니다.

굶지는 않지만 쓸모를 부여받지 못하는 삶입니다.

경제적 빈곤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은 먹고사는 것만으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감각, 하루를 쓴 자리에 남는 흔적. 그것이 없는 상태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우리는 아직 이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지도를 어떻게 읽을까

이 스케치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것이 예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밀라노비치 본인도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하나의 스케치로 내놓았습니다.

다른 방향을 보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MIT의 데이비드 오터는 2024년 논문에서,

AI가 전문 지식의 문턱을 낮춰 학위 없는 사람도 지금보다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면 오히려 중산층 일자리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계가 자리를 빼앗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리의 문을 넓히는 이야기도 있는 셈입니다.

또 하나는, 이 네 칸이 직업의 이름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직함을 가진 두 사람이 다른 칸에 있을 수 있습니다. 나뉘는 기준은 소득의 구조입니다.

내 소득은 몇 갈래인가. 한 갈래가 끊기면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은 모델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인가,

모델에게 먹일 것을 만드는 일인가, 모델을 부리는 일인가.

이 질문들에 답해 보면 자기 자리가 대략 보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자리는 자신이 생각하던 곳과 조금 다릅니다.

이름이 생긴다는 것

계급에 새 이름이 생긴다는 것은 세상이 새로 나뉘었다는 뜻입니다.

호모플루틱이라는 말은 십 년 전에 없었습니다.

그 말이 필요해졌다는 것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낡은 두 칸으로는

더 이상 담기지 않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이름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름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케냐에서 데이터를 분류하던 노동자들이 오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들을 가리킬 이름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지도가 다시 그려지는 중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칸에 서 있나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 —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